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량 해전 (문단 편집) === 2000년대 이후 === * 2001년에 출간된 [[김경진(소설가)|김경진]], 안병도 공저의 역사 전쟁 소설 '격류'에서 명량 대첩의 전말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절판된 지 오래고, 대신 그 내용은 김경진, 안병도 공저의 '[[임진왜란(김경진)|임진왜란]]'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명량 대첩에 [[시마즈 요시히로]]가 등장하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묘사가 고증에 합치된다. [youtube(jONJPcFXbIA)] [youtube(dM7spdkxBnk)] * 2005년에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95회와 96회에 나왔으며 96회 전체를 명량 대첩을 묘사하는 데 할애하였다. 다른 전투들은 한 회에 여럿 다루어지거나 조선 육군이나 조선 조정 등 전혀 관계없는 장면들과 함께 나온 데 비해 한 회가 온전히 전투 묘사에 바쳐진 것은 96회가 유일하다. [youtube(4EYIRC8Sbx4)] [youtube(wIvPsmssTjk)] [[KBS]] DRAMA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올린 주요 장면. 다만 고증 오류가 여럿 되는데, 먼저 당시 조선 함대는 이순신의 좌선을 제외하면 모두 도망갈 생각에 전전긍긍했지만 본작에서는 (상단 표 지휘관 란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는 명량 대첩에 참가한 바도 없는) 권준, 이영남, 우치적 등이 이순신의 행동에 동조하여 적극적으로 나서서 싸우는 것으로 묘사되었고,[* 권준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영남은 최소한 사천 해전부터 이순신을 깊이 신뢰하고 생사를 같이한 인물로 묘사되며, 우치적은 이순신의 충실한 부하가 되라는 원균의 유지를 받든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역사를 비틀어 이들을 명량 해전에 참가한 것으로 설정한 이상, 도망치지 않고 싸우는 것으로 연출할 수 밖에 없었다.] 철쇄설을 답습한 한편 이순신이 직접 백병전을, 그것도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문구가 새겨진 칼을 들고 벌였다. 이 검은 실제 길이가 2m에 가까운 검인데[* 현충사에 보관된 유물의 설명에는 의장용이라 써놨지만 실제로 이정도 장검은 충분히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검이며 이는 이 검과 비슷한 길이의 일본 노다치가 현대에도 충분히 수련이 이루어지고 실전적 동작이 충분히 잘 구사되는 걸로 입증이 된다. 오히려 사극에서 잘 묘사되는 지휘관의 짧은 검이 의장용 내지 비상용으로만 사용되는 검이라 장병기를 든 적을 상대로 대적할수가 없다.] 아무리 소품으로 경량화를 시켜도 검술에 익숙하지 않은 배우가 다루기엔 힘든 까닭에 실제 검보다 대폭 축소된 검을 소품으로 사용하였다. 이순신은 수군 최고지휘관이었던 만큼 직접 적과 검으로 교전한 기록이 없지만 작품 내에서는 검으로 적장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포함하여 33명의 적을 베는걸로 표현되었다. 또한 [[안위]]가 겁에 잔뜩 질린 모습은 그럭저럭 잘 고증되었지만, 문제는 그 부분만 잘 되었다는 것.[* 실제 인물 안위는 상당히 용맹한 인물이었으며, 상술되었듯이 이순신의 대열에 가장 먼저 합류한 인물도 그다. 당장 제작진들이 검증은 제대로 안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밖에 권준은 ~~해전 당시 수도를 지키는 것이 주 임무인 충청 수사였으므로,~~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권준이 명량 대첩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충청 수사였던 데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한 달 전의 [[칠천량 해전]]만 보더라도, 충청 수사 [[최호]]는 칠천량에서 전사했고, 그 후임으로 임명된 것이 [[권준]]이다. 당시 권준이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칠천량 패전 이후 수습이 가능했던 충청 수영 휘하 함선이 아직까지는 없었던 데 있다고 봄이 더 합리적이다.] 그리고 김억추의 판옥선이 진격한다. 실제 김억추는 물살이 바뀌었어도 끝까지 진격하지 않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참전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 있었다.[* 대신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김억추가 아니라 그의 군관인 서한수다.] 무엇보다 저 문제투성이 철쇄설로도 모자라 무려 '''밧줄로 해협을 봉쇄하는''' 도저히 정상참작이 불가능한 문제가 나온다. 이렇듯 문제가 적지 않기는 하지만, 이순신 이하 조선 수군의 처절한 전투 신은 상당히 훌륭하다. 그 이전까진 조선수군은 백병전에서 왜군보다 약하다는 언급이 자주 나왔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이 창이나 칼을 놓친 상황에서 허리춤에 가지고 있던 [[조선낫]]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적들을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 반복해서 찔러 죽이고 얼굴에 피가 튀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잔인함보다는 처절함이 느껴진다. 특히 일본 무사에게 어깨를 한 번 베여 쓰러지고 다시 칼 맞아 죽기 직전 성한 팔로 무사의 발을 잡아 넘어트린 다음 낫을 뽑아들어 악 받친 비명을 지르며 무사를 마구 찔러 죽이는 조선 수군 졸병의 모습은 극에 달한 처절함을 잘 연출하고 있는데, 졸병이니만큼 단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수들만큼 훌륭한 장면을 연출했다.[* 의외로 조선낫은 다른 나라의 낫에 비해 다재다용으로 쓸 수 있는 구석이 많다. 자세한 것은 [[조선낫]] 참조.] 또한 초반 다른 전선들이 물러나 있는 동안 혼자 한참동안 전투를 치르고 있는 대장선의 묘사라던가 그 휘하 병졸들은 다른 장수들과 다르게 적선의 숫자에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 않고 그동안 훈련한 대로 지시에 따라 침착하게 전투를 수행하는 모습도 잘 그려진다. --대장선버프-- --애초에 이순신의 대장선에 탈 정도면 이미 정예중의 최정예-- 또한 처절함 이후 시작되는 조선 수군의 [[역관광]] [[세리머니]]에서는 절로 희열을 느낄 수 있으며, 일본 수군 무장들이 그와 대조적으로 집단 멘붕하는 모습도 감상 포인트. 특히나 와키자카(김명수 분)가 주저앉은 채 "어찌, 어찌 이~ 이런... 일이..." 라며 한탄하는 것과 '''"퇴각해..... 퇴각↘하란↗말이야아아아아아!!!"''' 라며 퇴각 명령을 내리는 것, 도도(최동준 분)가 나자빠진 채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다! 하아하하핳-!!"''' 하며 절규하는 장면[* 이 장면은 대본에서는 망연자실하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고 대사는 없다. 즉 배우의 [[애드리브]]였던 셈.] 등은 당시 일본군이 맛봤을 절망을 조금이나마 간접 체험하게 해 준다.[* 바로 직전 있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의 기쁨에 가득찬 환희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와키자카(김명수 분)가 고양이를. 그것도 [[터키시 앙고라]]를 던지면서 '미시(未時: 13시~15시)야, 미시...!!!' 라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동물학대|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함선에 고양이를 데리고 탄 것은 눈의 동공을 보면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고양이의 눈을 확인해 시간을 알아보는 기록이 있긴 있다. 닌자들도 주변의 고양이들의 동공을 통해서 시간을 알아봤다라는 기록도 존재하는데 그만큼 고양이들이 시간에 따라 들어오는 햇빛의 양에 따라 동공의 수축과 확장을 하기 때문이다. 고증에 맞지 않는 건 당시에는 일본에 해당 묘종인 '''터키시 앙고라'''가 전래되기 이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단 한 척의 판옥선도 격파하지 못한 상태서 일본 수군에게 물살이 유리한 시각마저 끝났다고 한탄하면서 그 분노를 고양이한테 화풀이하는 장면인 것. 한편 조선군은 [[앙부일구]]를 보며 시각을 확인하고 신기전으로 시각을 알리는 장면이 나오며, 자막으로도 오후 1시라고 나온다. 그 밖에 이순신이 임지로 향하는데 삼도수군통제사에 복직됐어도 전선은커녕 소수의 부하들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통상이 돌아오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 따라나서는 모습이나. 출전 직전,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이순신이 조선 수군들에게 대장선이 선봉이 될 것을 선언하며 전투 의지를 북돋는 장면도 이순신의 지휘관으로서의 위엄과 휘하 병사들의 충성심을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명장면이다. 연설 직후, 병졸들도 어쩔 줄 몰라 하고 그걸 보던 배설이 실실 비웃는데 다른 병사들 사이에 있던, 하반신이 불구가 된 정대만이 창이나 칼도 아닌 돌을 내리찍으며 이순신을 따라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자 다른 병사들과 하급 군관들도 사기가 올라 창을 찍으며 함성을 내지르는 장면은 꼭 한 번 볼만할 명장면. [[https://www.youtube.com/watch?v=m2ksrhdu4O8|해당 영상]] >'''명량 해전.''' >이것은 '''단 13척의 배'''로 >적선 333척을 물리친 실로 기적적인 승리였다. >이 날 분멸한 적선의 수는 모두 '''31척,''' >분멸, 격침되진 않았으나, 전투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적선의 수는 '''92척'''에 달했으며, >물리친 적의 수는 모두 '''18466명에 이른다.''' > >당시 일본군은 이순신의 파직과 [[원균]]의 [[칠천량 해전|패전]]으로 인해 >한산에서 여수까지 제해권을 확대하고, >수륙병진(水陸竝進)을 통한 도성 장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명량 대첩은 바로 그 일본군의 전략을 모조리 무산시킨 일전(一戰)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과 휘하 장수들, 이름없는 군사들과 백성들. 그들의 강인한 투지와 저력이 이루어 낸 쾌거였다. >또한 이후, [[1597년|정유년]]에서 [[1598년|무술년]]으로 이어질 수군 재건과, >'''23전 23승''' 이순신의 빛나는 전승 신화. >그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 > 불멸의 이순신 명량 해전 편 내레이션. * 2005년 영화 '[[천군(영화)|천군]]'은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 급제하기 4년 전에 대해서 다룬 영화인데, 에필로그엔 이순신 장군이 성공적으로 급제한 뒤 명량 대첩 직전 상황을 비춰준다. 4년 전 한심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이순신이 역사 속의 멋진 모습으로 병사들을 격려하면서 칼을 뽑는 간지나는 장면이 연출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나오는 음악은 그야말로 장관. * [[다나카 요시키]]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회랑의 전투]]나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이 명량 대첩과 다소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조류와 기타 장애물로 인해 함대 기동이 어려운 전장에서, 해당 함대가 진영의 마지막 전력이라는 점 등이 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 전투들은 명량 대첩과는 달리 방어 측에게 별다른 전술적 우위[*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체급 차이, 일본 측 화기가 거의 무력화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발휘된 조선 화포의 뛰어난 화력과 같은 것.]가 없는 상황에서 전술적 우위가 아닌 전략적 행동을 통해 벌어졌으며, 명량의 경우와는 반대로 패전한 점 등이 너무 다르다. 이는 오히려 [[테르모필레 전투]]를 참고했다고 보아야 할 듯. * 2014년 7월 30일 명량 대첩을 다룬 영화 [[명량]]이 개봉하였다. 기존 국내 박스 오피스 기록을 아주 압도적으로 갈아치운 영화. 감독은 [[최종병기 활]]의 [[김한민]]이 맡았고, [[최민식]]이 이순신, [[류승룡]]이 구루지마 미치후사를 연기한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다만 이것도 고증 오류가 꽤 있는데 이는 [[명량/역사 탐구]] 문서 참조. * [[징비록(드라마)|징비록]]에서는 49회에서 짧게 내레이션으로 처리되었다. 애초 명량 대첩을 다룰 의도 자체가 없던 작품인 만큼 명량 대첩 대신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에 비중을 뒀으나 불멸의 이순신 영상을 짜깁기해서 내보내거나 거북선이 나오는 등 기대에 못미치는 연출을 보여준다. * [[무한도전 위대한 유산]]에서 [[하하(가수)|하하]]와 [[송민호]]가 부른 곡 <쏘아>는 바로 이순신과 명량 대첩을 주제로 만들어진 곡이다. 당시 무대 위에 올라선 사람도 명량 대첩 직전 판옥선 수를 따라 12명이었으며, 가사에 이순신이 해전 직전에 올린 장계의 구절인 상유십이 미신불사가 숨어 있다. 또한 이뿐만 아니라 2017년 무렵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시국]]을 [[박근혜 퇴진 운동|빗대는]] 내용도 들어 있다. 마침 이게 방영된 2017년 역시 명량 대첩이 벌어진 1597년과 마찬가지로 [[간지]]가 [[정유년]]이라는 것도 소소한 포인트. * 소설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에서 김억추가 주인공으로 나오고 명량 해전이 묘사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